드론과 떠난 사가 여행
북큐슈 지방의 사가현은 일본 여행지 중 다른 곳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작년 애니메이션 하나로 이 지역은 매우 잘 알려지게 되었다.) 도쿄처럼 아름다운 야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사카와 후쿠오카처럼 즐길거리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운 좋게 특가 항공권을 예매한데다, 한적한 시골 여행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일정은 매우 빡빡하게 세우지만....)
오후에 도착했기 때문에 바로 타케오 지역으로 이동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타케오도서관이다. 휴식한답시고 비행기타고 저녁에 도착해서 차동차를 끌고 처음 가는 곳이 도서관이라는게 떨떠름하기는 했지만, 오늘 쉴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들렸다.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안에 들어오니 형형색색으로 물든 인테리어가 인상깊었다. 단체 관광객들도 많이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도서관 내 스타벅스에서 주문한 프라프치노를 빠르게 처리한 후, 숙소로 이동했다. 첫날은 센트럴 호텔 다케오(Central Hotel Takeo)에서 숙박했는데, 직원들이 한국말을 할 줄 알아서 매우 편했다. 그리고 숙소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처음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숙소였다. 기본적으로 온천 여행에는 료칸을 예약하는데 기본적으로 가족 또는 단체로 구성된 방이 많아, 혼자 여행하는 나는 적절한 가격의 방을 구하는게 쉽지 않았다. 건물 내 온천이 있어 굳이 이동을 안해도 되지만, 여기는 오전에 이용해보기로 하고 다케오에서 유명한 온천인 로몬(Romontei)으로 갔다.
한밤 중에 가니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이는 기괴한 대문이 보인다. 이용료는 호텔 투숙객 할인으로 200엔(?) 정도였던 것 같다. 수건은 별도 대여비가 있다고 호텔에서 수건 가방을 챙겨주며 귀띔해줬다. 탕이 야외라는 것(칸막이는 있음)과 온천물이 미끌거린다는 점이 일반 목욕탕과 다른 것 같다.
다음날 오전에는 타케오를 둘러보고 도자기로 유명한 이마리 마을을 방문하기로 했다.
처음 간 곳은 미후네야마 라쿠엔(Mifuneyama Rakuen)이다. 산과 벚꽃이 반영된 호수는 얼마나 아름다울지 기대를 하면서 갔으나, 안타깝게도 일주일 전 벚꽃은 다 지고 말았다. 게다가 내부에서는 드론 촬영도 금지라, 둘둘이를 꺼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타케오 신사도 마찬가지다.
일정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원래는 도자기 마을 중 이마리만 가려고 했으나, 아리타 마을까지 들리기로 했다. 나는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하지 않고 촬영만 할 목적이니 시간은 충분했다. 도자기 품질은 아리타 마을이 약간 더 좋다는 말이 있으나, 까막눈인 내가 봐서는 이마리와 도긴개긴인 것 같다. 관광 목적으로는 오히려 이마리 마을이 더 예쁘고 볼거리가 많은 것 같다.
나는 계획했던 장소들보다 이동 중 보였던 이름도 모를 작은 마을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날씨도 좋아서 평화로운 사가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조금 이동하다가 멈추고를 반복하다 보니, 오늘 저녁을 보낼 우레시노 마을에는 해질녘쯤 도착하게 되었다.
우레시노는 사가현 내에서 온천 마을로 유명하다. 특히,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끈 이후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더 늘었다고 한다. 우레시노는 주요한 곳은 모두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이므로, 우선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이번에는 유젠노야도 도우카이(Yuzennoyado Toukai)라는 곳을 예약했는데, 이곳을 평가하자면 방이 정말 크다. 혼자인데 2~3인실 크기의 방을 배정해줬다. 마찬가지로 건물 내 온천이 있어 굳이 나갈 필요도 없다.
금요일 저녁이었으나, 원채 한적한 마을이라 사람이 간간히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외부 관광객으로 보였다. 걷다보면 주황색 지붕의 고딕풍의 이색적인 건물이 보이는데, 온천마을로 유명한 우레시노에서도 가장 유명한 시볼트노유라는 온천탕이다. 숙소에서도 결국 같은 물을 쓰기 때문에 굳이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애니메이션에도 나온 이 마을의 상징(?) 적인 건물이다. 이 날은 많이 이동해서 피곤했기에 숙소 내 온천에서 쉬면서 하루를 보냈다.
우레시노 내에서 걸어서 이동하기에 조금 먼 거리에 작은 폭포가 있다. 토도로키 폭포는 우레시노 둘레길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기도 하다. 첫 계획에는 둘레길을 걷는 일정도 고민했으나, 방문하는 마을을 늘리면서 돌아보는 것은 다음에 하기로 했다.
이 날은 한번에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우레시노에서 바로 북큐슈 최북단인 가라쓰까지 이동한 뒤부터가 본격적인 일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약 1시간 반정도 달리니 가라쓰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동으로 시간이 빠듯해서 그런지, 먹는 것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라쓰는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자연이 만든 멋진 조형물들을 볼 수 있다. 그 중 7개의 동굴이 이어진 나나쓰가마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경승지이다. 이를 보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둘레길을 통해 반대편에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람선을 타고 동굴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정확한 위치를 안내하지 않아,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주변에서 많이 맴돌았다. 바닷바람이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둘둘이를 믿고 멀리(너무 멀리는 아닌) 날려 보냈다.
다음으로 가라쓰 성으로 이동했다. 일본의 성들은 다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다. 겉과 달리 내부는 엘리베이터도 있고 최신식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성 꼭대기 전망대는 바다를 낀 가라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이다. 사가에 오고서 벚꽃을 보지 못했던 나는, 그래도 최북단인 이곳에서는 볼 가능성이 있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카가미야마 전망대로 가는 길에 약 5km 구간 소나무로 둘러싸인 도로가 있다. 니지노마쓰바라는 약 100만 그루의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유명한 가라쓰 버거를 판매하는 캐러밴이 있다. 490엔이면 가장 하단에 있는 스페셜 버거를 먹을 수 있다. 일반 패스트푸드 점과 달리 빵이 구워서 나오며 근래 먹은 버거 중 가장 맛있었다.
카가미야마 전망대로 가는길은 굉장히 복잡하다. 많은 급커브 구간을 지나 한참을 올라와야 하는데,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가라쓰만과 마을을 단절하듯 보이는 니지노마츠바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은 가라쓰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핫스팟이다. 야경도 멋지다는에 아쉽게도 저녁까지 사가로 가서 차를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해지기 전에 내려와야 했다.
무사히 사가 시내에 차를 반납하고, 마지막으로 묵은 곳은 게스트하우스 하가쿠레(Guesthouse Hagakure)이다. 여기는 게스트하우스인 만큼 이전 숙소보다 저렴한대신 불편한게 많다. 다만 직원이 친절하고 한국어로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또한 자전거를 빌릴수도 있는데, 시간당 100엔, 5시간 이상부터는 모두 500엔이다. 사가 시내에서 볼 거리들은 애매한 이동거리를 가지고 있다. 걷기에는 멀고 차로 이동하기에는 가까워 자전거가 제격이다. 다음날 탈 자전거를 빌리고 계획을 세우며 사가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마지막 날 오전은 사가 신사를 먼저 갔다. 이전 신사들과 달리 규모도 크고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어린 또래의 친구들도 많았는데, 일본에서 신사 아르바이트가 인기라는 기사를 얼핏 본 기억이 떠올랐다. 사가에 와서 가장 많이 본 새가 까마귀인데, 특히 신사에서 울어대니 분위기가 더 을씨년스러웠다.
다음으로 간 곳은 사가성 혼마루 역사관인데, 사가에서 본 건물들 중 가장 인상깊었다. 목조 건축물의 엄청난 크기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관광에 흥미를 유발하도록 고려한 아이디어들이 더 독특했다. 오락실의 스틱을 조정해서 3D로 내부를 둘러본다거나 VR을 이용한 사진촬영 등도 재미있었다. 각 언어별로 번역된 가이드도 비치되어 있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내가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장소에 갔을 때 이렇게 흥미를 느낀 적이 있었는지 잠시 돌아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벌룬 뮤지엄인데, 실제 열기구가 아니면 관심이 없어 내부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참고로 사가에서는 매년 11월에 국제 벌룬 축제를 연다. 이때 하늘을 수놓는 열기구들의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사가의 명물인 마루보루를 사기 위해 기타지마라는 가게에 들렸다. 타케오 이자카야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현지인이 사가에서 가장 유명한 빵이므로 꼭 먹어보라고 추천해줬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더 많이 사올걸 후회가 될 만큼 아주 맛있다.
보통 온천 마을은 휴식을 취하면서 느긋하게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나는 빠른 이동을 선호하고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성향이지만, 천천히 시간의 여백을 느끼는 것도 좋은 여행의 조건 중 하나라고 느꼈다. 사가는 아직까지는 렌트카로 다니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내가 원할 때 혼자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큰 장점이다. 만약 대중 교통을 이용했다면 내가 보고 싶었던 곳의 반도 못 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한적하고 자유로운 시골 여행이었다.